90년간 이어온 혁신적 솔루션, 국제구조위원회 설립 90주년
아인슈타인부터 아할란 심심까지, 지난 90년의 국제구조위원회의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들을 함께해 보세요.
아인슈타인부터 아할란 심심까지, 지난 90년의 국제구조위원회의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들을 함께해 보세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90년 전, 나치 독일에서 탈출하는 난민들을 돕기 위해 훗날 국제구조위원회가 된 국제구호협회를 설립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설립 이래 국제구조위원회는 사람들의 생존, 회복, 삶의 재건을 돕기 위해 대담하고 혁신적인 솔루션을 만들고 위험을 감수하며 대담한 인도적 활동으로 인도주의 지원의 지평을 바꾸는 데 헌신해 왔습니다.
지난 90년 동안 국제구조위원회가 어떻게 성장하고 발전했는지,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함께 알아보세요.
UN과 난민법도 존재하지 않았던 당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인도주의자들로 구성된 소규모 단체를 만들었고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박해를 피해 떠나는 유럽인들이 안전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약속했습니다. 1933년 7월, 이들은 훗날 국제구조위원회가 되는 국제구호협회를 설립했습니다. 국제구호협회의 목표는 독일 나치 체제하에 고통받고 있는 난민을 인종과 성향에 관계없이 도와주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버지니아 출신의 젊은 언론인 배리언 프라이(Varian Fry)는 반대 세력에 부딪히고 자원이 한정된 난민을 돕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했습니다. 프라이와 긴급구조위원회 팀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위험에 빠진 난민을 위한 출국 허가와 비자를 받기 위해 모든 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하며 밤낮으로 노력했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나치 순찰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프랑스의 외딴 숲속에 소규모 사업체를 설립했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현금 지원을 제공했습니다.
넷플릭스의 ‘대서양을 건너는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배리언 프라이와 훗날 국제구조위원회가 된 긴급구조위원회가 어떻게 수천 명의 난민의 피난을 도왔는지를 다루는 이야기입니다.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행진하던 헝가리 시위단이 비밀경찰의 공격을 받자, 비엔나의 국제구조위원회 팀은 의약품이 가득 찬 트럭을 몰고 헝가리로 향했습니다. 이들은 공격 후 원조를 제공한 첫 미국인들입니다.
이후 국제구조위원회는 설립 이래 최대 규모의 작전을 개시했습니다. 11월, 소련의 붉은 군대가 부다페스트를 침공하자 20만 명의 헝가리 난민들은 오스트리아로 피난을 떠났고 국제구조위원회는 그곳에서 난민 수용 준비를 완료한 상태였습니다.
헝가리 난민들이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 국제구조위원회는 영국, 벨기에, 서독, 스웨덴에서 보건 센터 및 대피소를 여는 등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활동을 확대했습니다. 또한 헝가리 난민들이 미국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20만 명이 넘는 앙골라 난민이 식민 지배를 피해 현재의 콩고민주공화국으로 피신했을 때도 국제구조위원회는 이들의 재건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국제구조위원회는 도움이 필요한 앙골라 국민에게 의료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난민 의사들과 협력하였습니다. 국제구조위원회는 현지 근로자 및 지역 사회 지도자와 협력하는 동시에 독립한 아프리카 국가에 도움을 제공한 최초의 인도주의 기구입니다.
1975년 베트남전 종식 이후 국제구조위원회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난민 재정착 노력을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미군 기지에 세운 사무소를 난민 캠프로 바꾸고 난민을 ‘후원’해 줄 미국인들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는 당시 새로운 개념으로 난민을 환영하고 포용하는 데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습니다.
1975년 미 정부가 난민을 위해 자체 사무소를 닫았을 때 이미 국제구조위원회는 난민들의 교육 및 취업 기회를 돕기 위해 전국에 16개의 재정착 사무소를 개설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약 50년이 지난 현재 국제구조위원회는 재정착한 난민들이 새로운 지역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28개의 난민 및 피난민을 위한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을 침공한 후인 1980년, 약 500만 명의 아프간 국민들이 이 분쟁으로 인해 실향민이 되었습니다. 국제구조위원회는 즉시 민간인을 돕기 시작했고 곧 아프가니스탄에 이동식 진료소와 약제실을 설립하여 분쟁에 휘말린 난민을 위한 지원을 제공했습니다.
현재 국제구조위원회의 이동 의료팀은 위험한 지형을 건너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사라예보는 세르비아 군대에 의해 봉쇄되었습니다. 이곳에서 국제구조위원회 직원들은 사라예보 국민을 돕기 위해 대담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고안했습니다.
폭탄과 저격 사격도 용감히 버티던 국제구조위원회는 사람들이 집에서 과일과 채소를 직접 기를 수 있게 씨앗을 보내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이 방법을 활용하면 사람들이 전쟁에 휘말려 목숨을 잃지 않으면서 필요한 식량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국제구조위원회 팀은 수도 펌프 및 여과 시스템이 포격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터널 안에 숨기는 등 가정에 수도 및 전력 공급을 재개할 수 있도록 주요 인프라 프로젝트를 지원했습니다.
국제구조위원회 팀은 위기로 피해 본 사람들이 단기적으로, 장기적으로 필요한 모든 지원을 빠르게 제공할 수 있도록 훈련받습니다. 그러나 위기는 각각 다릅니다.
2000년대 초 국제구조위원회는 인도네시아의 지진과 쓰나미, 파키스탄을 휩쓸고 간 지진, 허리케인 카트리나, 총 세 개의 주요 위기에 대응했습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경우 국제구조위원회의 첫 미국 위기 대응입니다.
국제구조위원회는 각각의 위기에 맞는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에 따라 개개인 및 지역사회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파악하고 도움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지 파트너들과 협력하고 현지 시스템을 보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지원을 설계합니다.
2014년 국제구조위원회는 서아프리카에서 커지던 에볼라 위기에 빠르게 대응했습니다. 보건 시스템 지원과 에볼라 전파에 관한 교육을 위해 지역사회 리더 및 보건 종사자들과 협력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국제구조위원회는 세계보건기구 및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와 협력하여 시에라리온에 있는 1,000개 이상의 의료 시설에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했습니다.
국제구조위원회 긴급위기 및 인도적 대응팀의 밥 키친(Bob Kitchen) 부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치명적인 에볼라의 서아프리카 발병 종식을 위해서는 직접 지역 사회 및 기구와 협력하여 에볼라 바이러스의 위험을 알리고 지역 보건 종사자를 동원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2012년 국제구조위원회는 잔혹한 전쟁으로 삶이 송두리째 바뀐 시리아 국민들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분쟁이 계속되면서 국제구조위원회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응급 지원을 넘어 직무 교육, 교육 기회 제공, 가족 재결합 서비스 등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2021년에는 시리아에 있는 약120만 명에게 도움을 제공했습니다.
또한 국제구조위원회는 튀르키예에서 온 시리아 난민 수천 명에게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그리스 레스보스섬에 긴급 대응팀을 설립한 첫 기구 중 하나입니다. 이후 그리스 내륙 및 세르비아로 활동 반경을 확대했습니다.
사인포스트(Signpost)는 전례 없는 방식으로 사람들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지식과 문제 해결 노하우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사인포스트 프로젝트는 수십만 명의 난민이 유럽으로 피난을 떠나던 2015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시스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트립어드바이저, 젠데스크, 메타와 같은 파트너사의 도움을 받으며 첨단 기술을 활용해 위기로 피해 본 사람들이 의료 및 법률 서비스와 같은 주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 줍니다.
2022년에는, 409만 명의 사람들이 직접 사인포스트 상품을 사용했고 2,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은 온라인으로 사인포스트 콘텐츠를 접했습니다.
그 어느때보다 세계적인 인도적 지원이 절실해졌다고 판단한 국제구조위원회는 현재의 접근방식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따라 2015년에는 위기로 피해 입은 지역사회 주민들의 문제점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설계, 시험, 확장하는 연구 및 혁신 팀, ‘에어벨 임팩트 랩’(Airbel Impact Lab)을 설립했습니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위기 상황에 대한 교육이든 분쟁과 기후변화로 피해 본 지역사회의 기후 회복탄력성을 증진하는 것이든, 국제구조위원회는 큰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담대한 해결책을 만듭니다.
1940년대 배리언 프라이와 그의 팀은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 떠날 수 있게 해준 비밀 은신처 ‘빌라 에어벨’을 만들었습니다. 에어벨 랩은 그 이름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국제구조위원회 초창기 모든 위기 대응자들과 마찬가지로 프라이 또한 운영 과정 지침이 될 만한 기준이나 지침서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프라이는 창의적인 방법을 적용하고 새로운 사고를 포용하며 계획적으로 위험을 감수하고 성공을 토대로 발전해 가며 배워갔습니다. 그리고 이 정신은 90년 동안 계승되어 현재까지도 국제구조위원회의 전 세계 모든 프로그램에 깃들어 있습니다.
2018년 국제구조위원회는 전 세계가 영양실조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바꾸는 혁신적인 방법을 소개했습니다. 이 간소화된 방법을 활용하면 급성 영양실조가 있는 모든 어린이가 진단의 심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복잡한 시스템 대신 한 장소에서 하나의 제품으로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들은 간편하고 영양가 높은 영양실조치료식으로 치료받으며 국제구조위원회는 부모가 뮤악(MUAC)테이프를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습니다. 이런 간편한 도구를 활용하여 부모는 정기적으로 집에서도 아이가 영양실조에 걸렸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말리 보건부와 협력하여 실시한 최근 국제구조위원회의 연구에 따르면 2만 7천 명 이상의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들이 이 혁신적인 방법으로 치료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중 92%가 회복했습니다.
2023년까지 국제구조위원회는 영양실조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150만 명의 어린이들을 도왔습니다. 혁신적인 프로토콜 치료법을 통해 국제구조위원회는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세계 영양실조 위기 문제 해결을 위해 각국 정상이 동참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국제구조위원회와 세사미 워크숍의 아할란 심심 프로그램은 인도적 대응 역사상 최대 규모의 유아기 대상 프로그램입니다. 2017년 존 D. 와 캐서린 T. 맥아더 재단이 ‘100 & Change’ 우수 이니셔티브로 선정하면서 실행되기 시작했고 이후 레고 재단이 보완했습니다.
아할란 심심 프로그램은 위기 속 어린이들이 학습, 성장,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수 있도록 국제구조위원회의 전문성과 세사미 워크숍의 교육적 효과를 결합한 것입니다.
아할란 심심의 프로그램과 서비스는 온라인, 대면 활동과 함께 이라크,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등지에 있는 170만 명 이상의 어린이 및 보호자에게 제공되었습니다. 2,300만 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세사미 스트리트’의 아랍어 버전인 아할란 심심을 시청합니다.
오늘날 국제구조위원회는 최근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우크라이나 전쟁, 동아프리카 가뭄 등 전 세계 위기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 있는 국제구조위원회 팀은 최악의 인도적 위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혁신적인 해결책을 계속해서 제공할 것입니다.